[토요판 커버스토리]강남 집값상승을 보는 ‘4人4色’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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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집값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를 △강남 아파트 소유주 △강남 아파트 세입자 △강남 아파트를 매각한 사람 △강북 아파트 거주자의 시각에서 살펴봤다.》


● 고진감래

3년 전 서울 서초구에 있는 아파트를 샀다. 1998년 서울 외곽의 다세대주택에 전세로 신혼살림을 차린 지 17년 만의 강남 입성이었다.

2000년대 초반에 2억 원을 대출받아 강북 지역의 3억 원짜리 아파트를 샀다. 대출금을 갚는 것은 큰 고통이었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고 아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기를 5, 6년. 아파트 값이 조금 올랐다. 그 아파트를 팔고 추가로 대출을 받아 좀 더 비싼 아파트로 옮겼다. 그런 식으로 네 차례 이사를 했다. 그때마다 ‘재산’은 불어났다.

서초구로 옮긴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 교육 때문이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강북지역 고교 교사가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학교에서는 명문대에 단 한 명도 진학시키지 못했다. 무조건 강남으로 가라”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대출금을 다 갚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추가로 대출을 받았다. 아파트 구입 대금 8억5000만 원 중 3억5000만 원이 대출금이었다. 올해 들어 이 아파트가 12억 원까지 올랐다. 주변에서는 “횡재했다”라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동안 아끼고 또 아꼈다. 대출 이자를 물기도 벅찼다. 그 고통을 감내하고 강남에 입성했다. 강남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 해서 화려한 생활을 하진 못한다. 대출금 이자 부담은 더 커졌다. 강남 집값 상승으로 얻는 이득은 ‘고진감래(苦盡甘來)’와도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강남 집값이 오르면 무조건 잡아야 한다는 주장은 억지라고 생각한다. 교육 환경이 좋고, 투자 가치가 높은 지역이니 집값이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게 시장경제 아닌가.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것이 비도덕적으로 매도되는 걸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지금도 강남 주민들은 아파트 가격에 맞춰 재산세며 종합부동산세를 내고 있다. 이미 세금 부담이 작지 않은데도 정부는 세율을 높이거나 새로운 세금을 만들려 한다. 다주택자를 노린 거라지만 나처럼 한 채만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도 적용할까 걱정이다.

● 후회막급

서울 강남권에 입성한 지 4년째다. 아이가 취학연령이 되면서 좀 더 학구적인 분위기에서 교육을 시키고 싶다는 바람으로 큰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때 강남 입성을 결심했다.

강북지역 집을 팔고 모은 돈을 보태 강남 아파트 전세를 구할 수 있었다.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학원이 상대적으로 많아 아이가 다닐 수 있는 학원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랬다. 물론 체감되는 생활물가가 예전에 살던 곳에 비해 전반적으로 높긴 했다. 직장과의 거리도 멀어졌다. 그래도 그건 어른이 감수하고 조정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그때 크게 실수한 게 있었다. 빚을 내서라도 강남 집을 사지 않은 일이다. 4년여 전 집을 사면 어떻겠느냐고 주변에 상의했을 때 대개 말리는 분위기였다. 수억 원 빚내서 집 샀다가 집값이 떨어지면 어쩌느냐는 것이었다. 일단 살아보면서 살펴보고 집 매매를 정하라는 ‘신중론’이 대세였다.

그때 들어간 전셋집 매매가가 7억여 원. 이 가격이 지금 그 집 전세금이다. ‘강남 집값은 오늘이 제일 싸다’는 말의 뜻을 매일 절감하고 있다. 지금 사는 동네엔 온통 ‘그때 샀더라면…’ 하는 아파트뿐이다. 어느 곳 하나 떨어지는 기세는커녕 오르기만 했다는 얘기다.

맞벌이로 일하지만 열심히 저축을 해도 오르는 전세금 맞추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다 2년마다 전셋집을 알아보려니 아예 살 집을 장만해야겠다 싶다. 하지만 이제야 매매를 고려하려고 보니 집값이 너무 뛰어서 대출 이자가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다. 두 달 전에 봤던 집이 그새 2억 원 올랐다. 청약을 노려 보려고 하니 대출 규제가 심해지면서 부담이 커져 이마저 요원해졌다.

월급쟁이 노후 대비는 결국 집이라는데, 고령화 시대에 누군들 노후를 대비해 집을 갖고 싶지 않을까. ‘오를 일은 있어도 떨어질 일은 없다’는 강남 집 한 채는 당연한 수요다. 게다가 정부가 특목고 자사고 폐지 정책을 내놓으면서 ‘남은 교육특구는 강남 8학군’이라는 쏠림 때문에 강남 집값의 상승곡선은 더욱 가팔라졌다.

● 강남불패

최근 들어 신문이나 TV에 서울 강남 집값을 다루는 기사가 나오면 고개를 돌리는 일이 잦다. 2005년 9월 팔았던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가 떠올라서다. 당시 6억9000만 원에 매각했던 85m²(34평형)짜리 아파트는 최근에는 14억 원까지 올랐다. 앞으로도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10여 년 전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던 오른손이 원망스러워진다.

그때엔 집안에 우환이 생겨 급전을 만들기 위해 집을 팔아야만 했다. 전셋집을 구한 뒤 매도 금액과 전세금 간 차액으로 급한 불을 껐다. 아파트를 팔지 않고 대출받을 생각도 했지만 강남 집값이 크게 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용단을 내렸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전방위적인 규제책을 내놓고 있어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패착이었다. 팔았던 아파트는 그해 말 8억 원까지 뛰었다. 불과 서너 달 사이에 2억 원 이상 오르는 것을 지켜보면서 열심히 일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 강남권 아파트를 사기 위해 10여 년간 호시탐탐 노렸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외곽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2016년 10월 부모님과 살림을 합치면서 송파구 마천동 아파트 148.5m²(45평형)를 6억5000만 원에 구입했다. 같은 송파구여서 강남권 아파트를 다시 산 것이 아니냐는 주변 얘기도 있지만 ‘블루칩’이었던 올림픽선수촌아파트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가격도 별다른 변동이 없다.

최근 10여 년간 집을 사고팔면서 체험한 교훈은 ‘강남 불패’ 신화가 맞다는 것이다. 수요가 많은 블루칩 아파트는 결코 배신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새삼 뼈저리게 느꼈다. 정부가 아무리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대책을 쏟아내더라도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작용하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남권 재건축 규제 완화 등으로 공급 물량을 늘렸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강남 집값이 상대적으로 안정됐다. 대신 규제를 강화하면서 공급을 줄인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집값이 오히려 뛰고 있다.

● 오불관언

나름대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강북 아파트에 살고 있다. 14년 전 입주할 때는 재개발이 완료된 새 아파트였다. 전철이나 버스로 도심과 사통팔달 연결되는 교통망이 좋은 데다 한강 공원도 가까워서 입주 후 아파트 값이 적잖이 오르기도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질 때까지는 매매가가 10억 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그뿐이었다. 교통 좋은 것은 아무 의미 없었다. 결국은 학군이지.

강북에 직장을 둔 맞벌이이지만 한때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아예 살 계획을 세웠다. 아이를 초등학교까지는 그럭저럭 동네 학교에 보내도 괜찮은 듯했지만 큰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니 학군 고민이 됐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고 저축한 돈을 빼내면 큰돈 융자받지 않고도 얼추 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전세로 가느니 아예 매입을 하면 투자 가치도 있을 것 같았다.

아파트를 내놨지만 쉽게 팔리질 않았다. 전세를 내주고 전세금과 저축한 돈에 융자를 좀 얹어서 강남으로 진출할까 생각도 해봤다. 포기했다. 세금 부담보다 1가구 2주택자가 되기 싫었다. 투기자로 찍히는 게 부담스러웠다. 근데 나중에 보니 문재인 정부 내각이나 청와대 참모들 가운데 1가구 2주택자가 수두룩했다. 그 배신감이란…. 정부가 하라는 대로 했더니 나만 손해 본 느낌이었다.

강남 아파트 자고 나면 얼마 오르고, 3.3m²(평)당 얼마 한다는 뉴스 나올 때마다 열이 나지만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정신건강에 해롭다. 정부가 강남 때려잡기 하지 말고, 여윳돈 있는 사람들 집 두세 채 사게 하자. 그 대신 강남 고가 주택에 보유세 많이 물리고 그렇게 마련된 재원으로 다른 지역 교육시설 확충이나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법을 만들면 좋겠다. 지금 1가구 2주택자 규제는 강북 지역 2주택을 합한 것보다 고가인 강남 지역 1가구 1주택자가 덕을 보는 모순이 있다. 정부가 막지도 못하면서 자꾸 시장에 개입하니까 ‘똘똘한 한 채’라는 개념까지 생겨 되레 강남으로만 몰리는 것 아니냐. 또 강남지역 주택대출금리를 지금보다 더 올려야 한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강남#집값#부동산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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