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우리 사회에 ‘안 맞는 옷’ 노동이사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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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기업 경영에 참여시키는 노동이사제를 공공에서 민간으로 확산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어제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간담회에서 “(노동이사제는) 금융권에 먼저 적용하기보다 노사 문제의 논의와 합의가 이뤄진 뒤 그 틀 안에서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달 20일 KB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노조 추천 사외이사 후보에 대한 선임 안건이 부결된 지 4일 만에 나온 정부 입장이다. 공공분야 노동이사제 도입을 의무화하는 법률 개정안이 여당 중심으로 추진되는 국면에서 정부가 민간으로 이 제도를 확대하는 전제 조건으로 ‘노사 합의’를 제시한 셈이다.

노동이사제는 원래 노동자가 직접 이사회 구성원이 되는 방식이지만 KB금융의 사외이사 선임안처럼 노조 추천 인사가 사외이사로 들어가는 것도 노동의 경영 참여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이 제도는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대주주의 독단적 경영을 막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경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노동계의 이익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정작 주주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 때문에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 다수 국가에서는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의 이원적 구조로 운영하면서 노동이사는 감독만 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노동이사제는 이 제도 도입을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올 1월 서울연구원을 시작으로 서울교통공사, 서울농수산식품공사 등 12개 기관에서 16명의 노동이사를 영입했다. 기획재정부는 내년에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준비 중이다. KB금융 노동이사에 찬성표를 던진 국민연금이 주요 주주로 있는 다른 상장기업에 대해 노동이사 선임을 재추진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 노동이사제는 안 맞는 옷이다. 독일을 비롯해 협력적 노사관계를 구축한 유럽과 달리 우리는 적대적 노사관계로 갈등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이 제도는 유럽식 사회적 경제를 근간으로 한다.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우리 현실과 거리가 있다. 민간기업의 경영체계를 흔들 수 있는 제도를 억지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노동자#기업 경영 참여#노동이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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