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새 수익성 반토막… ‘한국경제 허리’ 휘청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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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1186곳 분석

한국 경제는 수출형 대기업이 협력사들을 끌어주는 ‘외끌이 모델’을 통해 성장해왔다. 대·중소기업이 하나의 가치 사슬로 엮여있는 이 모델은 경기가 활황일 땐 다함께 성장하지만 최근처럼 중국과 같은 강력한 후발주자가 등장하거나 환율 하락, 경기 부진 등으로 무한경쟁 시대에 접어들면 경쟁력이 약한 기업은 도태되는 결과를 낳는다.

동아일보는 산업연구원과 함께 자동차, 전자, 철강, 조선, 기계 등 5개 업종의 주요 대기업 8곳에 납품하는 1, 2차 협력사 1186곳의 1999∼2013년 매출, 영업이익, 부채비율, 연구개발(R&D) 투자액, 임금 등 경영지표를 분석해봤다. 8개 대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포스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두산인프라코어였다.

○ 재무구조는 개선, 채산성은 후퇴


조사 결과 한국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견·중소 협력사들은 외환위기 이후 재무건전성은 개선됐지만 채산성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그룹 계열사(현대모비스 등)가 아닌 협력사들의 부채비율은 1999년 210.8%에서 2013년 115.7%로 개선됐지만 영업이익률은 5.0%에서 3.4%로 악화됐다. 삼성전자 협력사들도 부채비율은 73.1%에서 63.5%로 좋아졌지만 영업이익률은 10.8%에서 4.2%로 떨어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대기업과 협력사 간, 또 협력사들 간에 영업이익과 임금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이 발견됐다. 2008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이 5.7%에서 2013년 13.8%로 증가하는 동안 협력사의 영업이익률은 4.6%에서 4.2%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현대차그룹 계열 협력사들의 영업이익률이 8.2%에서 9.3%로 증가하는 사이 비계열 협력사들의 영업이익률은 3.6%에서 3.4%로 내려갔다.

현대차그룹 계열 협력사의 평균 급여를 100으로 봤을 때 비계열 협력사들의 급여 수준은 2008년 64에서 2013년 59로 격차가 커졌다. LG전자 협력사들 중 연매출이 5000억 원 이상인 기업들의 평균 급여를 100으로 봤을 때 연매출 1500억 원 이상 5000억 원 미만인 업체와 연매출 1500억 원 미만인 업체들과의 급여 격차는 2008년 ‘100 대 106 대 84’에서 2013년 ‘100 대 87 대 61’로 벌어졌다.

대기업들은 해외 진출과 규모의 경제 구축, 품목 다변화 등을 통해 영업이익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특정 품목과 대기업 한두 곳에 매출을 의존하는 중견·중소기업들은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해 협력사들은 양극화의 원인에 대기업에 유리한 계약 방식도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A사의 한 관계자는 “중국업체와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기업들의 납품단가 인하 압박이 세지고 있다”며 “일부는 우리가 감내하지만 나머지는 2, 3차 업체에 전가하는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B사의 한 관계자도 “우리가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해 원가를 절감하면 그 수익의 절반을 대기업이 가져간다”고 지적했다.

○ 국내 대기업에만 매출 의존

최근 현대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등 대기업이 실적이 악화되자 조선, 기계 중소기업들의 실적이 함께 추락하고 있다.

조선 협력사들도 2013년 매출이 전년 대비 17.6% 감소했고, 영업이익률이 2년 전(7.7%)의 10분의 1 수준인 0.7%로 떨어졌다. 조선 1차 협력사 관계자는 “2008년 이후 매년 5∼10%씩 현대중공업에서 나오는 일감이 줄면서 잔업도 없어지고 직원들 급여는 15∼20% 줄었다”며 “협력사 일부는 법정관리에 들어가거나 은행 패스트트랙 절차를 밟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3년 두산인프라코어 협력사들의 매출은 2012년보다 평균 2.6% 줄었고, 영업이익률은 2.5%로 2년 전(6.3%)의 3분의 1로 떨어졌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국내 생산물량을 해외로 돌리거나 사업을 내재화(아웃소싱 하던 것을 자체 생산)하면 중소기업들은 자연스레 일감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에 의존말고 자체 기술력 키워야” ▼

○ R&D 부진→자생력 결여 악순환


1186개 기업의 연구개발(R&D) 집적도(매출액 대비 R&D 투자액 비중)도 선진국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협력업체들이 자생력을 갖추지 못하면 일부 대기업에 매출을 의존하게 되고, 대기업만 믿고 자체 R&D를 소홀히 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13년 세계 2500대 R&D 투자기업들의 업종별 평균 R&D 집적도는 △자동차 부품 4.1% △전자 부품 4.3% △기계 부품 2.5% △철강 0.9%였다. 그러나 같은 해 국내 협력사들의 R&D 집적도는 △현대차 계열 협력사 2.0%, 비계열 협력사 1.8% △삼성전자 협력사 2.3%, LG전자 협력사 1.4% △기계 협력사 1.1% △철강 1.0% 등이었다. 철강을 제외하곤 모두 세계 2500대 기업 평균의 절반 수준이었다.

전자 1차 협력사인 C사는 지난해 영업적자가 약 3배로 늘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처음엔 우리도 획기적으로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대기업을 고객으로 만들었지만, 안정적인 매출처가 생기고 대기업에서 시키는 R&D만 하다 보니 다른 신기술을 개발하지 못했다”며 “전자업계는 기술 변화가 워낙 빨라 언제 매출이 ‘0원’이 될지 모른다”고 털어놨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경제의 ‘허리’인 중견·중소 협력업체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대기업과의 수평적 협력 체계의 구축과 자생적 R&D를 통해 전문화 국제화 대형화를 이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유현 yhkang@donga.com·최예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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