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헌재 김영란법 ‘합헌’… 국회와 정부가 과잉입법 바로잡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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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어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이 포함된 데 대해 “언론과 사학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며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이 법은 공직자, 언론인, 교원 등과 그 배우자가 한번에 100만원, 연간 합계3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을 경우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해도 처벌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시행령에서는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을 공직자 등이 받을 수 있는 금품의 상한선으로 두었다. 배우자가 직무와 관련해 식사 대접 등을 받은 사실을 안 경우 신고하지 않으면 형사처벌 된다. 헌재는 배우자 금품 수수 신고의무도 과도하지 않다고 봤고, 부정청탁의 개념도 모호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허용되는 금품의 상한선을 시행령에 위임한 것도 적절하다고 인정했다.

김영란법의 본래 취지는 공직자의 부패를 방지하자는 것이다. 언론과 사립학교 종사자는 국민권익위원회 안에는 없다가 국회에서 졸속으로 집어넣었다. 400만 명으로 예상되는 이 법의 적용 대상 중 절반 이상이 언론 및 사립학교 종사자와 그 배우자다. 같은 민간 영역에서 언론인, 교사와 비슷하거나 공공성이 더한데도 법의 적용에서 제외된 시민단체 관계자, 법률가, 의료인, 금융인과의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헌재는 사립학교 교원에 대해 “사립학교는 공교육 체계상 국공립학교와 본질적 차이가 없고 사립학교 교원은 국공립학교 교원과 동등한 처우를 받는다”며 합헌이라고 했다. 언론인에 대해서는 “언론의 공정성을 유지하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언론인에게도 공직자에 버금가는 높은 청렴성이 요구된다”는 납득하기 힘든 이유를 달았다. 대한변호사협회는 헌재 결정 직후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공직자 부패의 척결이 언론의 자유를 제한할 근거가 되지 않는다”며 ‘민간 언론’은 적용 대상에서 빼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은 이제 다시 국회로 넘어갔다. 김창종 조용호 등 2명의 재판관은 “부패 근절을 이유로 사회의 모든 영역을 국가 감시망 아래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민간인 포함에 대해 위헌 의견을 냈다. 국회가 입법 과정에서 민간인을 넣은 대신 부정청탁의 유형에서 국회의원의 민원성 제안이나 건의를 쏙 뺀 것은 이 법이 얼마나 자의적으로 만들어졌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회는 헌재가 입법권을 존중해 내린 합헌 결정의 뒤에 숨지 말고 스스로 저지른 잘못을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바로잡아야 한다.

이번 합헌 결정으로 경제에 미칠 심대한 파장이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허용되는 금품의 상한선이 식사 대접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으로 입법 예고된 데 대해 농축수산업계 화훼업계 등 각계의 시름이 깊다. 호텔 백화점 식당 골프장이 직격탄을 맞으면 이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직원들도 피해가 불가피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이 법 시행으로 연간 11조 원의 경제적 손실을 예상했다. 어제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중소기업청은 3개 부처 공동으로 ‘3-5-10’ 규정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기로 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합법과 위법의 경계가 불분명해 정상적인 친목 교류와 건전한 선물 관행마저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되는 만큼 대안을 모색해주기 바란다”고 거듭 촉구했다. 대통령과 국민권익위는 시행령을 속히 고쳐 허용되는 금품의 상한선을 현실화해야 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공직사회의 부패를 근절하는 혁신 없이는 유사한 참사의 재발을 막기 힘들다는 심각한 반성을 낳았다. 김영란법은 최초 입안된 취지에 맞게 시행되면 공직사회 부패 방지에 기여해 우리 사회의 투명도를 높일 수 있다. 다만 현실과 동떨어진 과잉입법은 아무도 지키지 않아 결국 사문화(死文化)하고 만다.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많은 사람을 잠재적 범법자로 만드는 혼란이 커지면 법의 취지도 시간이 갈수록 퇴색할 것이다. 국회와 정부가 9월 28일 시행에 앞서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을 바로잡아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해야만 법의 성공적인 안착을 기대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김영란법#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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